"기사 못 구해 흙탕물 헤치고 배달"…폭우가 부른 역대급 대란

입력 2022-08-09 20:49   수정 2022-08-10 08:54

서울의 한 배달대행업체 사장인 김모 씨(53)는 폭우로 길에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던 지난 8일 저녁 음식을 자신이 '직접 배달'했다. 도로 침수로 오토바이를 운행할 수 없어 1km 이상 걸어서 배달해야 했다. 한 음식점으로부터 주문이 들어왔지만 이를 배달해 줄 기사가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가족들이 배달을 만류했지만 기상 악화를 이유로 배송을 거부할 경우 대행 계약이 끊어질까봐 우려됐다. 지난해 겨울에도 폭설로 배달 기사를 못 구해 배송에 차질을 빚자 가맹점 몇 곳이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악천후에는 아무리 배달비를 많이 주겠다고 해도 기사를 구할 수가 없다”며 “하루 배달을 거부하면 일대 가맹점들 계약이 줄줄이 끊긴다고 보면 된다. 배달비를 받으려고가 아니라 앞으로의 업체 운영을 위해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날부터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배달업계 피해도 속출했다. 일부 지역에서 한때 배달료가 2만원 이상으로 치솟는 등 수도권 곳곳에서 ‘배달 대란’이 벌어졌다. 새벽배송이나 음식 배달 서비스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지난 8일 오후 8시께부터 인천 남부~서울 남부~경기~강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비구름대가 기록적 폭우를 쏟아내며 곳곳에서 침수와 정전, 누수 등으로 인한 각종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서울 강남 등 저지대 도로와 지하철역 등등 곳곳이 성인 허리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한때 최대 11개 구에서 산사태 경보·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긴박한 상황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되자 “사고 위험이 크다”며 배달 기사들이 콜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잇따랐다. 이 때문에 기사 구하기가 어려워진 배달 어플리케이션(앱)이나 배달대행업체가 ‘배달 기사 모시기’에 나서면서 배달료가 크게 올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배달앱에 제시된 배달팁이 2만4800원까지 치솟은 사례가 게시되며 화제가 됐다. 평소 기본 배달비 3000원보다 8배나 상승한 셈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서모 씨(29)는 “코로나19 확진으로 격리 중이라 음식을 시키려 했는데 배달이 어렵다며 대부분 직접 포장해가길 권유했다”면서 “겨우 배달이 되는 식당을 찾으면 배달팁만 9000~1만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각종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치킨 한 마리 시키는 데 배달비가 1만7000원이라 놀랐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배달업계에 따르면 배달료는 통상 4000~4500원의 기본요금에 주말·심야·폭설·폭우 시 할증이 붙으며 경우에 따라 6000~7500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배달 기사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경우 프로모션을 제공해 한 건에 1만5000~2만원 수준을 책정해 근무를 유도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배달 주문 받는 것을 아예 포기하거나, 직접 배달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양모 씨(55)는 “평소 이용하던 배달대행업체가 어제(8일) 영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포장 주문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상황은 이해하지만 배달이 들어와 사정을 설명할 때면 답답했다”고 했다. 금천구에서 족발 집을 운영하는 강모 씨(36)도 “한 시간 넘게 배달 가능한 기사를 찾았지만 아무도 없어 가게 근처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가족들이 직접 배달해줬다”고 전했다.


배달 플랫폼들은 이미 라이더 사고에 대비해 이날 일부 지역의 배달을 중단했다. 요기요는 전날 오후 9시부터 서울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 등 일부 지역에 대해 배달을 하지 않는다고 고객에게 사전 안내했다. 요기요 관계자는 “비상망을 돌려서 24시간 모니터링을 진행해 폭우 피해가 심각한 지역 중심으로 주문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8일 라이더의 배달 가능 지역을 평소보다 축소해 운영하는 '거리 제한' 시스템을 적용하고, 라이더들에게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공지를 내보냈다. 이에 따라 강남구, 동작구 등 일부 지역 배달이 지연됐으며 대부분 식당들이 영업을 다른 날보다 일찍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이츠도 8일 일부 지역 배달을 중단했다가 9일 재개했다.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 제품들도 제때 배송되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마켓컬리는 8일 일부 지역에 한해 새벽 배송을 하지 못해 고객에게 개별 안내했다. 통상 전날 주문하면 새벽 7시 전에 물건을 배송해주지만, 일부 지역 고객에는 오전 9시 이후에 배송된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서울 강남구에선 일부 배송 차량이 물에 잠긴 것으로 전해졌다. 마켓컬리는 배송을 받지 못한 고객에 대해 환불을 진행할 예정이다. 9일 주문 건에 대해서는 다소 지연되더라도 배송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슈퍼 온라인몰 배송을 담당하는 '롯데슈퍼 프레시센터'의 경우 서초점이 폭우로 정전돼 9일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지금도 일부 온라인 주문 건에 대해 당일 배송이 어려워 10일 재개된다. 새벽 배송을 하는 쿠팡과 SSG닷컴도 폭우로 전날 강남, 서초 등 일부 지역의 배송이 늦어져 고객에게 안내 문자를 보냈다. 이들 업체에선 배송 차량이 일부 침수 지역에서 진입하지 못해 되돌아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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